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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스포츠 영화를 보면 "결국 마지막에 이기겠지"라는 공식을 기대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화 「1승」은 그 공식을 처음부터 비틀어버립니다. 여자 배구단 핑크 스톰은 시즌 내내 지기만 하고, 감독은 프로 경력이 전무하며, 구단주는 팀을 '싸서' 샀다고 공언합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웃기려고 만든 영화인 줄 알았는데, 보고 나서 꽤 오래 생각이 남았습니다.
핑크 스톰이라는 팀, 무엇이 문제였나
일반적으로 스포츠 팀이 약한 이유는 실력 부족이라고들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조금 달랐습니다. 핑크 스톰의 가장 큰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팀 내부의 관계였습니다.
팀에는 6년 동안 단 한 번도 시합에 뛰지 못한 선수 강지숙가 있었습니다. 6년이라는 숫자가 제겐 적잖이 충격이었습니다. 그냥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팀 내 왕따 문화가 한 선수의 커리어를 통째로 앗아간 것입니다. 이민희 선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과거 에이스 성유라의 '따가리'로 낙인찍혀 공조차 제대로 받지 못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여기서 '따가리'란 특정 선수의 들러리, 혹은 그 선수를 받쳐주는 역할만 하도록 암묵적으로 고착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배구에서 선수 한 명이 공을 받지 못한다는 건 사실상 코트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팀 문화가 지속되면 팀 전체의 전술 유연성이 크게 떨어집니다.
저도 예전에 단체 활동을 하면서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 실력과 무관하게 특정 사람에게 역할이 몰리거나, 반대로 어떤 사람은 아무리 기여하려 해도 무시당하는 분위기가 생기면, 조직 전체가 조용히 무너지더라고요. 핑크 스톰을 보면서 그때가 다시 생각났습니다.
- 강지숙: 6년간 출전 기회 없음 — 팀 내 따돌림 문화의 직접적 피해자
- 이민희: '따가리' 낙인으로 포지션과 정체성을 동시에 잃은 상태
- 구단 재정 부족 + 핵심 리베로 매각 + 문제 선수 영입 = 복합적 위기
포지션 변경, 단점을 장점으로 뒤집는 발상
김우진 감독이 각성한 뒤 꺼낸 카드는 파격적인 포지션 변경이었습니다. 레프트(Left)만 15년을 뛴 오보라를 라이트(Right)로, 6년간 시합에 못 뛴 강지숙을 세터(Setter)로 바꾸는 결정이었습니다.
여기서 세터란 배구에서 공격의 흐름을 결정하는 핵심 포지션입니다. 팀의 공격 패턴 전체를 조율하는 사령탑 역할이라, 경험이 부족한 선수에게 맡기는 건 통상적으로 상당한 모험입니다. 그런데 김우진 감독은 강지숙가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일반적으로 포지션 변경은 선수가 원래 하던 것을 못할 때 내리는 '강등'처럼 여겨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이건 꼭 그렇지 않더라고요. 같은 팀에서도 맡은 역할이 달라지는 순간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움직이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어떤 역할이 그 사람에게 맞는지를 알아보는 건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김우진 감독은 선수들의 단점이 사실 장점의 이면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오보라의 공격성은 라이트에서 오히려 돌파력으로 살아나고, 방수지의 체격 조건은 블로킹 능력으로 전환됩니다. 블로킹(Blocking)이란 상대 팀의 스파이크를 네트 위에서 직접 차단하는 기술로, 신장과 점프력이 강점인 선수에게 특히 유리한 기술입니다. 단점을 숨기는 대신 그걸 구조 안으로 끌어들여 장점으로 만든 셈입니다.
팀 갈등, 실력보다 무서운 것
포지션을 바꾼다고 팀 갈등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김우진 감독이 이민희를 다시 공격수로 투입하겠다고 하자 선수들의 반발이 극심했습니다. 경기 중에도 이민희에게 공이 가지 않는 상황이 반복됐고, 결국 팀은 또 패배했습니다.
스포츠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팀 응집력(Team Cohesion) 붕괴'라고 설명합니다. 팀 응집력이란 구성원들이 공동의 목표를 향해 함께 움직이려는 심리적 결속력을 의미하는데, 이 응집력이 낮아지면 개인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팀 퍼포먼스는 급격히 하락합니다. 실제로 출처: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의 연구에서도 팀 응집력은 경기 결과와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고된 바 있습니다.
솔직히 이 장면은 예상 밖이었습니다. 저는 감독이 결단을 내리면 선수들이 따라주는 흐름으로 갈 줄 알았는데, 영화는 그렇게 쉽게 풀어주지 않더라고요. 갈등은 훈련으로 봉합되는 게 아니라 진짜 사과와 인정이 있어야 비로소 조금씩 녹는다는 걸, 이민희가 무릎을 꿇고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느꼈습니다.
저도 단체 활동에서 관계가 틀어진 경험이 있는데, 그때 가장 힘들었던 건 사람들 사이에 쌓인 감정이 일 자체보다 훨씬 오래간다는 점이었습니다. 핑크 스톰의 선수들이 공을 패스하지 않는 장면이 과장처럼 보이지 않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1승의 의미, 이기는 것 말고 다른 것
시즌 막바지, 핑크 스톰은 리그 2위 스파이크 윙스를 상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경쟁하는 경기를 펼칩니다. 1승이 눈앞에 왔지만, 네트 터치 비디오 판독으로 득점이 취소되며 아깝게 패배합니다. 그리고 남은 상대는 리그 1위 블랙 퀸즈, 그것도 김우진의 고교 시절 감독이었던 문호성이 이끄는 팀입니다.
여기서 비디오 판독(VAR: Video Assistant Referee)이란 경기 중 오심 가능성이 있는 장면을 영상으로 재확인하는 시스템입니다. 배구에서는 챌린지 제도로 불리며, 판정 번복 여부가 경기 흐름을 완전히 뒤바꾸기도 합니다. 핑크 스톰이 이 판독에서 득점을 잃는 장면은, 가장 억울한 방식으로 1승을 놓치는 순간이어서 보는 내내 답답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영화에서 실제 1승보다 더 중요한 장면이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수들이 다시 이기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과정이 그것입니다. 처음에는 패배가 당연하다는 듯 경기에 임하던 선수들이, 시즌 후반에는 한 점 한 점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바뀝니다. 이 변화가 저에겐 실제 승패보다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출처: 국민체육진흥공단에 따르면, 스포츠에서 선수의 자기효능감(Self-Efficacy), 즉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실제 경기력과 직결되는 심리적 요인으로 꼽힙니다. 핑크 스톰이 시즌을 거치며 회복한 것은 바로 이 자기 효능감이었을 겁니다. 결과가 나오지 않는 시간이 쌓일 때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게 이 믿음이고, 그걸 되찾는 게 어떤 의미에서는 1승보다 어렵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1승」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건가요?
A. 직접적인 실화 기반은 아니지만, 국내 여자 배구 리그를 배경으로 한 픽션입니다. 다만 팀 내 왕따 문화나 만년 하위권 팀의 현실 등은 실제 스포츠 현장에서도 보고된 사례가 있는 만큼, 과장처럼 보이지 않는 설정이 많습니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영화는 실화에서만 감동이 나온다고들 하는데, 이 영화는 픽션임에도 현실적인 디테일이 꽤 살아있다고 느꼈습니다.
Q. 핑크 스톰은 결국 1승을 하나요? 결말이 궁금합니다.
A. 스파이크 윙스전에서 아깝게 패배한 뒤 마지막 상대는 리그 1위 블랙 퀸즈입니다. 결말을 직접 확인하는 게 훨씬 좋습니다. 다만 제가 느낀 건, 이 영화에서 승패 자체보다 선수들이 변해가는 과정이 훨씬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점입니다.
Q. 배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재미있게 볼 수 있나요?
A. 제 경험상 배구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몰입할 수 있습니다. 세터, 리베로, 라이트 같은 포지션 개념이 나오지만 영화 안에서 흐름으로 파악이 됩니다. 오히려 배구보다 팀 내 인간관계와 갈등 해소 과정이 중심이라, 스포츠 영화를 잘 안 보는 분들도 공감할 부분이 많을 겁니다.
Q. 김우진 감독 캐릭터가 현실적으로 느껴지나요?
A. 프로 경력 전무, 지도자 생활 실패의 연속이라는 설정은 다소 과장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보면 그의 실패가 오히려 선수들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하는 배경이 된다는 점이 설득력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공한 사람이 더 좋은 지도자가 된다고 알려져 있지만, 제 경험상 실패를 많이 겪은 사람이 남의 실패에 더 잘 공감하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결론
「1승」을 보고 나서 제가 가장 오래 생각한 건 포지션 변경이나 역전 드라마가 아니었습니다. 6년 동안 시합에 못 뛴 선수, 10년 넘게 같은 자리에 있었지만 사실 다른 곳에 맞는 사람이었던 선수들이 뒤늦게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장면이었습니다. 이기는 것보다 다시 이기고 싶어지는 것이 먼저라는 걸, 이 영화는 꽤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저도 결과가 안 나오는 시간이 쌓일 때 '이제 안 되나 보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 시간에 포기하지 않고 방향을 조금 바꿨던 게, 나중에 작은 전환점이 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핑크 스톰이 보여준 것도 결국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거창한 성공보다, 다시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는 순간이 사실은 가장 어렵고 가장 중요한 승리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