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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 「히말라야」를 보기 전까지 저는 이걸 단순한 등반 도전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엄홍길 대장이 다리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다시 에베레스트에 오르는 장면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이 영화는 정상 정복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을 끝까지 책임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실화가 더 무거운 이유 — 두 사람의 만남과 배경
제가 이 영화를 찾아보게 된 건 줄거리보다 실화라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엄홍길 대장은 히말라야 8,000m급 16좌를 완등한 세계적인 산악인입니다. 여기서 히말라야 16좌란 해발 8,000m가 넘는 세계 최고봉 14좌에 더해 엄홍길 대장이 독자적으로 추가한 야마다 노보루봉과 로체샤르를 포함한 16개의 봉우리를 말합니다.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산악인조차 완등하기 힘든 기록입니다.
그런 엄홍길 대장의 눈에 처음 들어온 박무택은 솔직히 인상이 좋지 않았습니다. 에베레스트 등정 중 조난을 당해 구조 요청을 했으면서도 태도가 불손했다는 것이 영화 속 묘사입니다. 제가 직접 그 장면을 보면서도 "저 사람이 어떻게 나중에 형제처럼 되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칸첸중가 등정 준비 과정에서 무택과 정복은 쫓겨나고도 다시 찾아왔습니다. 칸첸중가는 세계 3위 봉으로 해발 8,586m에 달하는 봉우리입니다. 쉽게 말해 지구상에서 가장 험한 산 중 하나에 도전하겠다고 두 번이나 문을 두드린 셈입니다. 그 끈질김 하나가 결국 두 사람의 관계를 바꾸는 첫 번째 변곡점이 됐습니다.
훈련은 가혹했습니다. 막내로 합류한 무택과 정복은 팀의 모든 잡무를 도맡으며 엄홍길의 혹독한 체력 훈련을 버텨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고된 과정을 함께 버텨낸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정은, 그냥 친해진 사람들과는 결이 다릅니다. 당시에는 아무 말 없이 그냥 넘겼어도 나중에 돌아보면 그 시간이 관계의 뼈대가 됐던 경험이 저도 있었습니다.
- 엄홍길: 히말라야 16좌 완등을 목표로 한 세계적 고산 산악인
- 박무택: 대명대학교 산악회 출신, 조난 구조 이후 엄홍길 팀에 합류
- 칸첸중가(해발 8,586m): 세계 3위봉, 두 사람이 처음으로 함께 정상에 선 산
- 박정복: 무택과 함께 팀에 합류한 동료, 마지막까지 무택 곁을 지킨 인물
정상보다 무거웠던 것 — 비박, 조난, 그리고 휴먼 원정대
칸첸중가 정상 공격 날, 엄홍길과 무택은 눈보라 속에서 비박을 했습니다. 비박(bivouac)이란 텐트 없이 산 중턱에서 밤을 지새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보온 장비가 제한된 고산에서의 비박은 동사 위험이 실재하는 극한 상황입니다. 그 어둠 속에서 두 사람이 나눈 대화 장면이 제게는 영화 전체에서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이었습니다. 말이 많지 않아도 옆에 있다는 사실 하나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저도 비슷한 감각을 일상에서 느낀 적이 있어서 그 장면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이후 두 사람은 K2, 시샤팡마, 에베레스트 등 히말라야 16좌를 향해 계속 동행했습니다. 그러다 엄홍길이 과거 사고로 인한 다리 부상이 악화되어 더 이상 등반이 어렵게 됩니다. 무택은 "제가 형의 다리가 되겠다"고 했지만, 엄홍길은 그에게 독립을 권했습니다. 제가 직접 이 장면을 보면서 그게 더 단단한 믿음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의존을 권하지 않고 혼자 설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그게 진짜 신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리고 비극이 찾아옵니다. 무택은 자신의 팀을 이끌고 에베레스트에 올랐다가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조난을 당합니다. 고산에서의 기상 급변은 예측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해발 8,000m 이상의 데스존(death zone)에서는 산소 농도가 평지의 약 33% 수준까지 떨어져 판단력과 신체 기능이 급격히 저하됩니다(출처: 세계기상기구 WMO). 무택은 정상 등정 후 하산 중 눈이 멀어버렸고, 동료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두고 가라고 명령했습니다.
친구 정복은 홀로 구조에 나섰지만 에베레스트 끝자락에서 이미 숨을 거둔 무택을 만났고, 정복 역시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엄홍길은 다시 산을 오르기로 결심합니다. 그렇게 꾸려진 것이 바로 휴먼 원정대입니다. 휴먼 원정대란 생존을 위한 등반이 아니라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조직된 특수 구조 원정대를 뜻합니다. 세계 등반 역사에서도 드문 사례였습니다.
일상에서 읽는 이 영화 — 엄홍길 함께한 시간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엄홍길은 다리 통증을 참으며 57일간 에베레스트에서 수색을 이어갔습니다. 우기가 다가오자 시신을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초조함이 팀 전체를 짓눌렀고, 그는 마지막 희망을 붙잡고 다시 산을 올랐습니다. 마침내 무택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그 장면에서 저는 말을 잃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목표가 아니라 관계였습니다. 세상은 성공이나 기록 같은 결과를 오래 기억하지만, 사람에게 실제로 남는 건 그 과정에서 누가 옆에 있었는가입니다. 저도 예전에 힘든 프로젝트를 함께 버텼던 동료에게 제대로 고맙다는 말 한마디 못 하고 흐지부지 연락이 끊겼던 적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사람이 옆에 있어줬던 것 자체가 당시 제가 버틸 수 있었던 이유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박무택이 히말라야 16좌에 오른 것은 명예나 기록을 위해서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엄홍길 대장과의 약속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등정 행위 자체가 관계의 언어였던 셈입니다. 국내 산악 전문 연구기관인 한국등산학교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고산 원정대에서 팀원 간의 심리적 결속력은 등정 성공률을 유의미하게 높이는 요소로 분석됩니다(출처: 한국등산학교). 기술적 역량만큼이나 사람 사이의 신뢰가 실질적인 생존 변수라는 것입니다.
제 경험상, 극한의 상황이 아니어도 이 원리는 통합니다.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 가족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 친구가 어려울 때 외면하지 않는 것. 이런 작은 선택들이 쌓여서 나중에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는 사람이 됩니다. 엄홍길 대장이 다리를 이끌고 에베레스트를 다시 오른 것도 결국 그 오랜 선택들의 총합이었을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히말라야」는 실화인가요?
A. 맞습니다. 엄홍길 대장과 박무택 대장의 실제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박무택 대장이 2004년 에베레스트에서 조난 후 사망했고, 엄홍길 대장이 2005년 휴먼 원정대를 꾸려 시신 수습에 나선 것까지 실제 사건을 충실하게 재현했습니다.
Q. 히말라야 16좌 완등이 왜 특별한 건가요?
A. 히말라야 16좌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8,000m급 14좌에 엄홍길 대장이 독자적으로 추가한 2개 봉우리를 포함한 개념입니다.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소수의 산악인만이 14좌 완등을 달성했을 만큼 극도로 높은 수준의 기록이며, 16좌 완등은 그보다도 더 희귀한 도전입니다.
Q. 휴먼 원정대는 어떤 조직인가요?
A. 휴먼 원정대는 등정이나 기록 수립이 아닌, 산에서 숨진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기 위해 꾸려진 특수 목적 원정대입니다. 엄홍길 대장이 박무택, 박정복의 시신을 데려오기 위해 조직한 이 원정대는 세계 고산 등반 역사에서도 드문 사례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Q. 데스존(death zone)이란 무엇인가요?
A. 데스존이란 해발 8,000m 이상의 고도를 가리키는 등산 전문 용어입니다. 이 구간에서는 산소 농도가 평지의 약 33% 수준으로 급격히 낮아져 인체가 소비하는 산소보다 공급받는 산소가 부족해지고, 판단력 저하와 신체 기능 이상이 빠르게 진행됩니다. 무택이 하산 도중 실명 상태에 이른 것도 이 극한 환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결론
제가 「히말라야」를 다 보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던 이유는 영화가 슬퍼서가 아니었습니다. 스스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장면들, 그냥 지나쳐버린 관계들, 뒤늦게 후회하게 된 순간들이 한꺼번에 밀려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엄홍길 대장이 57일간 눈밭을 헤맨 것은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마음의 무게가 정상보다 컸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지쳐 있거나, 함께했던 누군가가 문득 생각날 때 이 영화를 한 번 보시길 권하고 싶습니다. 극한의 산이 배경이지만 그 안에서 다루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질문입니다. 지금 함께 있는 사람에게 충분히 마음을 표현하고 있는가, 하는 그 질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