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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처음엔 그냥 화려한 범죄 오락 영화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홍콩 로케이션에 와이어 액션, 다국적 캐릭터들의 속고 속이는 전개. 그런데 다 보고 나서 한참 멍하니 있었습니다. 영화가 던진 질문이 생각보다 묵직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함께하는 사람의 진짜 목적을 알고 있습니까?" 이 질문이 저한테는 꽤 오래 남았습니다.
신뢰와 이해 - 믿는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은 다릅니다
일을 같이 하다 보면 "우리 같은 방향 보고 있지?"라고 확인하지 않아도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직접 겪어봤는데, 그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은 꼭 극적인 배신이 아니라 그냥 조용한 어긋남에서 시작됩니다. 저는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상대는 과정이나 자신의 입장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죠. 같은 말을 쓰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지도를 들고 있었던 겁니다.
「도둑들」의 인물들도 비슷합니다. 다이아몬드 '태양의 눈물'이라는 공동의 목표물을 두고 홍콩에서 뭉쳤지만, 각자가 진짜로 원하는 건 달랐습니다. 첸은 다이아몬드보다 티파니의 현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고, 마카오 박은 돈이 아니라 복수를 위해 이 판을 짰습니다. 줄리는 아예 웨이홍 갱단을 검거하기 위해 금고털이로 위장한 경찰이었고요. 같은 작전 테이블에 앉아 있었지만, 사람마다 그 자리에 앉은 이유가 전부 달랐습니다.
그때는 상대방이 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지나고 나서 떠올려보면 저 역시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제대로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믿는다는 건 상대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할 거라는 기대이고, 이해한다는 건 상대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 영화를 보면서 더 선명해졌습니다.
인물 심리 - 위기의 순간에야 비로소 보이는 사람의 진짜 모습
영화 속 인물 심리가 가장 날카롭게 드러나는 장면은 홍콩 호텔 금고 작전이 틀어지는 순간입니다. 예니콜은 호텔 외벽을 타고 방에 진입하고, 씹던 껌은 일본인 부부로 위장해 티파니를 VIP 실에 묶어두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런데 그 긴박한 순간에 씹던 껌은 현장에서 사망하고, 펩시는 탈출에 실패합니다. 계획이 무너진 뒤에야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마카오 박의 진짜 사정도 이때 드러납니다. 그가 이 거래를 설계한 건 돈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 '태양의 눈물'을 훔쳤던 파트너가 사실은 마카오 박의 아버지였고, 그 불미스러운 사건의 진상이 복수의 동기였던 겁니다. 저는 이 반전을 보면서 뭔가 탁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른 문제였습니다. 사람이 이해하기 힘든 행동을 할 때, 그 행동의 표면만 보면 욕심이나 배신처럼 보이지만 그 아래를 보면 훨씬 오래된 상처가 있는 경우가 있거든요.
인물 심리 묘사 측면에서 이 영화가 단순한 범죄 오락 영화와 다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인물 심리(character psychology)란 캐릭터가 어떤 상황에서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내면의 동기 구조를 말합니다. 쉽게 말해, 행동의 이유를 설명하는 층위입니다. 「도둑들」은 이 층위를 후반부에 한꺼번에 열어버리면서 앞서 봤던 장면들을 다시 읽게 만듭니다. 그게 이 영화가 오래 기억에 남는 이유라고 봅니다.
- 씹던 껌: 작전 중 현장 사망 가장 예상 밖의 퇴장
- 첸: 공동 목표물 대신 개인 목적(티파니 현금)을 추구
- 줄리: 팀원이 아닌 경찰 웨이홍 검거를 위한 위장 잠입
- 마카오 박: 금전 이익이 아닌 아버지와 얽힌 복수가 진짜 동기
- 펩시: 금괴 발견 후 마카오 박의 진심을 뒤늦게 깨달음
카메라가 사람을 따라가는 방식, 최동훈 감독의 촬영 기법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도둑들」이 이렇게 잘 읽히는 이유 중 하나가 촬영 방식 자체에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습니다. 최동훈 감독은 촬영 현장에서 배우 연기 중 커트를 나누는 것을 최대한 지양한다고 합니다. 커트 나누기란 한 장면을 여러 각도로 잘게 끊어 찍는 편집 방식인데, 이를 줄이면 배우가 감정의 흐름을 끊지 않고 연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인물들은 어딘가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촬영 감독 최영환과의 조합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최영환 촬영 감독은 여러 배우의 동선과 감정선을 동시에 포착하는 데 능숙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홍콩 로케이션 촬영 당시 도로가 좁아 조명 발전차를 댈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제약을 오히려 색감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방향으로 해결했습니다. 실제로 홍콩 시퀀스의 채도가 유독 짙게 느껴지는 건 그 선택의 결과입니다.
마카오 카지노 장면은 제한된 공간만 촬영 허가를 받아 촬영됐고, 임달화와 김혜수의 카체이싱(car chasing) 장면 즉 차량 추격 시퀀스는 두 배우를 따로 촬영한 뒤 합성하는 방식으로 완성됐습니다. 전지현의 와이어 액션 신은 몸이 가벼워 보일 정도로 소화됐다는 평이 나왔는데, 제가 직접 영상으로 확인해 봤을 때도 CG 티가 거의 없었습니다. 최동훈 감독이 CG보다 실제 촬영을 선호한다는 원칙이 여기서도 드러납니다. 김윤석 배우가 위험 장면을 직접 소화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영화 제작 방법론(filmmaking methodology) 즉 한 편의 영화를 어떤 철학과 기술로 만들어나가느냐의 관점에서 보면, 「도둑들」은 최동훈 감독이 이 영화를 멜로 영화로 접근했다는 점이 특히 인상 깊습니다. 겉으로는 범죄 장르의 문법을 따르지만, 실제로는 사람들 사이의 감정과 관계를 찍은 영화라는 거죠. 그 시각으로 다시 보면 상하이와 씹던껌의 감정선이 단순한 서브플롯이 아니라 영화의 중심축 중 하나라는 게 보입니다.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KMDb(출처: KMDb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에서도 「도둑들」은 2012년 한국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한 작품으로, 관객 수 기준으로도 당시 역대 2위에 오른 작품입니다. 단순한 오락성만으로 그 숫자가 나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도둑들에서 마카오 박의 진짜 목적이 뭔가요?
A. 마카오 박은 돈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태양의 눈물' 다이아몬드를 둘러싼 과거 사건의 실체를 밝히고 복수하기 위해 이 판을 설계했는데, 그 사건의 파트너가 실은 마카오 박의 아버지였습니다. 영화 후반부에야 이 사실이 드러나면서 앞서 봤던 그의 행동들이 다시 읽힙니다.
Q. 줄리가 경찰이었다는 게 반전인가요, 처음부터 복선이 있었나요?
A. 영화는 줄리의 정체를 후반부까지 철저히 숨깁니다. 줄리는 웨이홍 갱단 검거를 목적으로 금고털이 팀에 잠입한 경찰이었습니다. 되돌아보면 그녀의 특정 행동들이 복선으로 읽히기도 하는데, 처음 볼 때는 그냥 지나치게 설계된 장치입니다.
Q. 전지현 와이어 액션 신은 CG인가요, 실제 촬영인가요?
A. 최동훈 감독은 CG보다 실제 촬영을 강하게 선호합니다. 전지현의 호텔 외벽 와이어 액션 신도 실제 와이어를 활용해 촬영됐으며, 현장에서 배우들이 직접 와이어를 타고 소화했습니다. 그 결과 CG 특유의 부자연스러움 없이 몸이 실제로 가볍게 느껴지는 영상이 완성됐습니다.
Q. 홍콩 촬영 장면이 색감이 유독 강렬한 이유가 있나요?
A. 홍콩은 도로가 좁아 조명 발전차를 현장에 대기시키기 어려운 환경이었습니다. 최영환 촬영 감독은 이 제약을 색감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방식으로 돌파했고, 그 결과 홍콩 시퀀스에서 유독 채도가 높고 농밀한 화면이 만들어졌습니다. 제약이 오히려 개성 있는 영상미로 이어진 사례입니다.
결론
「도둑들」을 보고 나서 제게 남은 질문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가'가 아니었습니다. '나는 함께하는 사람의 선택을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였습니다. 사랑, 배신, 복수, 욕망이 뒤섞인 이 영화는 결국 사람이 무엇을 선택하느냐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메시지가 범죄 장르의 포장지 안에 꽤 정직하게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진흥위원회 KOBIS(출처: 영화진흥위원회 KOBIS) 기록을 보면 「도둑들」은 2012년 누적 관객 1,298만 명을 돌파한 작품입니다. 그 숫자가 단순히 액션과 스타 캐스팅 덕분만은 아닐 겁니다. 보고 나서도 뭔가 남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한 번은 인물들의 동기와 눈빛을 따라가며 보시길 권합니다.

